외로운밤, 별자리로 읽는 오늘의 마음

유난히 고요한 밤이 있다. 핸드폰 화면을 덮어도 잠이 오지 않고, 창문 밖 어둠이 더 두껍게 느껴지는 밤. 누구에게 말도 못 하는 빈 공간이 가슴 안쪽을 벌리고 있을 때, 나는 종종 하늘을 올려다본다. 여름이면 현관 앞에서, 겨울이면 목도리를 단단히 감고 옥상으로 올라간다. 구름이 적당히 걷힌 날은 별들이 제 목소리를 돌려받은 듯 또렷해지고, 도심의 불빛에 씻겨나간 자리에도 별자리의 뼈대는 희미하게 드러난다. 사람 마음이 매일 같지 않듯 하늘도 하루하루 기분이 달라 보인다. 외로운밤, 나는 별자리에서 오늘의 마음을 읽는다. 과학 외로운밤 교과서의 별이 아니라, 살아온 날들과 비벼 읽은 별들이다.

밤이 주는 가장 오래된 위로

누구나 한 번쯤은 어린 시절 평상에 누워 은하수를 보며 이름을 모르는 별들에게 말을 걸어본 기억이 있다. 도시에서 자라 별보다 간판 불빛에 익숙한 이들에게는 과장처럼 들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강원 영월의 별마로천문대에서 처음으로 맨눈으로 본 은하수는 핸드폰 사진으로는 도저히 담을 수 없는 밀도의 흐름이었다. 머리 위로 하얀 가루를 흩뿌린 듯한 띠가 서쪽에서 동쪽으로 걸려 있었고, 그 아래로 북쪽 하늘의 카시오페이아가 의자 모양의 다섯 별을 각 잡고 앉아 있었다. 그날 밤 나는 새벽 2시가 다 되어서야 숙소로 돌아왔다. 그 전까지 계속 그 자리였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몸과 마음이 묘하게 복구되는 기분이었다.

별을 보며 마음이 가라앉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과학적으로 설명하자면 어둠 속에서 멀리 초점을 맞추는 행위가 망막과 뇌를 차분하게 만들고, 반복적인 하늘의 패턴이 예측 가능성의 신호를 보낸다. 문화적으로 말하자면 수만 년 동안 인류가 같은 하늘을 보고 이야기를 지어내고 길을 찾으며 두려움을 견뎌온 축적의 결과다. 두 설명 모두 맞다. 중요한 건, 하늘은 나의 시간을 조금 느리게 만든다는 사실이다. 급한 일도 급히 끝나지 않고, 슬픈 감정도 한 번에 사라지지 않는다. 대신 별들의 오래된 시간 속에서 내 호흡이 바뀐다. 그 순간 나는 내 문제를 작게 만든 것이 아니라, 문제를 둘러싼 배경을 조금 넓혔다.

별자리, 점괘가 아닌 언어

별자리를 이야기하면 운세부터 떠올리는 이들이 많다. 누군가는 가볍게 재미로 읽고, 누군가는 미신이라며 거리를 둔다. 내 경험으로는, 별자리를 점괘로만 볼 필요도 없고, 그렇다고 아무 의미도 없다고 치부할 이유도 없다. 별자리는 패턴을 찾는 훈련이자, 상징을 통해 마음을 정리하는 언어다. 하늘의 별들은 서로 물리적으로 아무 상관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다만 지구에서 보기에 특정한 윤곽을 만들었고, 사람들은 거기에 인간사의 굴곡을 투사해 이야기를 만들었다. 이것이 상징의 힘이다. 같은 하늘을 보더라도, 어떤 이야기를 얹느냐에 따라 마음이 움직인다.

운세는 확률적으로 모호한 문장을 제시한다. 오늘은 작은 실수를 조심하세요, 귀인이 찾아옵니다 같은 말들. 반면, 별자리를 언어로 본다는 것은 별들의 위치와 계절의 흐름, 밤하늘의 변화가 상징하는 리듬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이를테면, 겨울의 오리온은 늘 남쪽 하늘에서 키 큰 사냥꾼처럼 떠 있다. 차갑고 투명한 공기 덕분에 별들의 밝기가 도드라진다. 이 계절에 외로움이 더 잘 드러나는 것은 단지 연말의 센치함 때문만이 아니라, 환경 자체가 대비를 키우기 때문이다. 나는 겨울의 오리온을 볼 때, 선명함이 주는 기쁨과 도드라진 자국의 아픔을 동시에 떠올린다. 이 복합적 감정이 오늘의 마음에 더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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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절의 별자리가 전하는 마음의 결

계절은 우리 몸과 생각을 바꾼다. 밤하늘도 계절을 따라 색이 바뀐다. 외로운밤, 같은 단어가 계절마다 다른 질감을 띤다.

봄, 처녀자리와 목성의 느긋함. 봄철 남쪽 하늘에는 처녀자리와 보리수처럼 알이 촘촘한 전갈자리가 미리 인사한다. 목성이 근처에 머무는 해에는 맨눈으로도 주목을 끈다. 목성의 밝기는 대략 -2에서 -1.5 사이를 오르내린다. 겉보기로 가장 밝은 별 중 하나라 고개만 들면 찾을 수 있다. 봄밤의 외로움은 겨울의 칼날 같은 선명함보다 둔탁한 기다림에 가깝다. 꽃가루 알레르기로 콧속이 간질거리고, 낮은 갑자기 길어진다. 무언가 시작해야 할 것 같은 압박이 오지만, 몸은 아직 겨울의 껍질을 다 벗지 못했다. 처녀자리의 넓은 사각형, 그 아래 스피카의 한 점은 중심을 잃지 말라는 표식처럼 보인다. 커다란 판 위의 작은 확신 하나. 거창하지 않아도 되는 다짐이 이 계절에 어울린다.

여름, 전갈자리와 은하수의 환한 과잉. 여름밤은 과감하다. 습도가 높아 투명도는 떨어지지만, 은하수의 심장이 남쪽에서 치고 올라온다. 전갈자리의 붉은 안타레스가 배꼽 같은 중심을 잡고, 사수자리 방향으로는 성운과 성단이 몰려 있다. 도심에서도 가끔 가장 밝은 별 몇 개는 건질 수 있다. 시골로 나가면 하늘이 반쯤 흘러내리는 착시가 생긴다. 여름의 외로움은 역설적으로 과잉 속에서 찾아온다. 사람도 모임도 많고 소리도 큰데, 그 틈에서 내 자리가 희미해질 때가 있다. 나는 이럴 때 전갈의 꼬리를 따라가며, 너무 많은 것을 붙들려는 내 손을 내려놓는 연습을 한다. 은하수가 저토록 복잡해도, 내 눈은 한 번에 한 조각만 볼 수 있다. 그것이면 충분하다는 위안이 여름밤에 어울린다.

가을, 페가수스의 사각형과 카시오페이아의 단정함. 가을은 정리의 계절이다. 대기가 맑아지고, 하늘은 푸른 대신 딱딱해진다. 서쪽 하늘에서 페가수스의 커다란 사각형이 거울처럼 걸려 있다. 북동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카시오페이아가 W 자로 어깨를 움츠리듯 매달려 있다. 출장과 보고서가 몰려드는 시기, 해야 할 일의 목록은 길어지는데 정작 말문은 쉽게 트이지 않는다. 이때 나는 페가수스의 사각형 모서리를 마음속 리스트의 네 항목으로 본다. 그날 가장 중요한 것 네 가지를 정리해, 사각형 별 네 개로 각각 이름을 붙인다. 이름을 붙인 일은 기이하게도 움직이기 쉽게 된다. 가을밤의 외로움은 미세하게 건조하다. 사람 사이 간격이 늘어난 듯한 공기에 머뭇거림이 배어난다. 카시오페이아의 질서 정연함은 혼란 속의 작은 규칙이 된다.

겨울, 오리온과 큰개자리의 압도. 겨울은 별이 가장 잘 보이는 계절이다. 차가운 공기는 흔들림을 줄인다. 오리온의 허리띠 세 별은 한눈에 들어오고, 곁의 베텔게우스와 리겔은 색으로 존재감을 선언한다. 남동쪽의 큰개자리 시리우스는 밤하늘에서 가장 밝다, 겉보기 등급 -1.5에서 -1.4 사이. 겨울의 외로움은 절정 같은 순간에 찾아온다. 청량함이 너무 커서 오히려 비어 보일 때가 있다. 그럴수록 나는 오리온 대성운을 겨냥한다. 허리띠 아래 칼자루처럼 보이는 곳, 흐릿한 얼룩의 중심을 천천히 본다. 맨눈으로도 희미한 구름처럼 보이고, 쌍안경을 들이대면 날씨 좋은 날에는 부풀어 오르는 빛의 씨앗이 드러난다. 눈으로 확인 가능한 탄생의 자리, 그 한 점이 마치 마음속 온기와 같다.

별을 읽는 법, 오늘을 읽는 법

밤하늘을 읽는 일은 거대한 지식을 요구하지 않는다. 몇 가지 원칙과 습관만 자리 잡으면 된다. 정보가 너무 많으면 오히려 감상이 죽는다. 작은 디테일 몇 개면 충분하다.

    붉은 불빛을 준비하자. 손전등이나 스마트폰 화면 밝기를 낮추고 빨간 셀로판지나 필름을 덧대면 밤눈이 덜 상한다. 눈이 어둠에 적응하는 데 20분에서 30분이 걸린다. 밝은 별 두세 개의 이름만 익히자. 시리우스, 아크투루스, 베가처럼 계절을 대표하는 별이 좋다. 기준점이 생기면 별자리가 연결된다. 앱은 지도처럼, 하늘은 길처럼 쓰자. 별자리 앱을 잠깐 보고 고개를 들어 실제 하늘을 더 오래 본다. 스크린에 머무르면 감정이 얇아진다. 바람과 구름을 체크하자. 투명도와 시상, 둘 다 중요하다. 바람이 강하면 별이 반짝이기만 하고 디테일이 사라진다. 가로등이 많은 곳에서는 건물 그늘을 적극 활용한다. 너무 많은 기대를 내려놓자. 은하수가 희미해도, 별 몇 개만 보여도, 오늘의 하늘은 오늘만의 얼굴을 하고 있다.

여기까지가 도구의 문제라면, 이제는 마음의 습관에 가깝다. 외로운밤에 별을 본다는 건 단지 외로움을 잊자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그 감정을 온전히 느끼되, 감정이 전부가 아님을 몸으로 기억하는 과정이다. 별 하나를 자세히 보면, 같은 별도 분 단위로 높이가 달라진다. 지구는 계속 돈다. 그 움직임을 따라 눈동자가 미세하게 움직일 때, 내 안의 막혀 있던 생각도 틈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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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하늘의 한계, 그래도 남아 있는 것들

서울 같은 대도시에서는 하늘을 보기 어렵다. 보틀 스케일로 따지면 1이 가장 어둡고 9가 가장 밝은데, 도심은 보통 8에서 9에 해당한다. 은하수는 물론 어두운 별자리는 거의 지워진다. 하지만 여기에도 마땅한 방법이 있다. 강변북로나 올림픽대로를 달리다가 여의도 근처에 차를 멈추고 한강 너머로 고개를 들면, 생각보다 많은 별이 보인다. 북두칠성의 국자 모양, 여름에는 베가와 데네브, 알타이르가 그리는 여름 대삼각형의 뼈대가 드러난다. 구름이 옅은 날에는 목성과 금성도 도시의 불빛을 뚫고 존재감을 드러낸다. 금성은 -4에서 -3 정도로 밝아 서쪽 하늘 저녁놀에 떠 있거나 새벽 동쪽에 반짝인다. 사람들의 대화 소리, 버스의 브레이크 소리, 다리 난간에 부딪히는 바람 소리 속에서도 별은 제 길을 간다. 이 불균형이 오히려 좋을 때가 있다. 삶이 깔끔하지 않듯, 도시 하늘도 완벽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이는 것들은 더 기억에 남는다.

한 번은 장마가 끝나갈 무렵, 회사 건물 옥상에 올라갔다. 회의에서 나온 말들이 머릿속에서 재생 버튼처럼 반복되던 날이었다. 구름이 덩어리째 흘러가고, 틈새에 맑은 구름 없는 하늘이 잠깐 드러났다. 그 사이로 아크투루스가 오렌지색으로 반짝였다. 평소라면 그냥 지나쳤을 미세한 색감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 회의 때 들었던 말의 어조와 내 해석 사이에 간극이 있었다는 걸 알아차렸다. 내 귀가 증폭한 표현 몇 개가 있었던 것이다. 별이 내게 무슨 답을 준 것은 아니었다. 다만 아크투루스의 색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오는 짧은 순간만큼은 내 마음도 같은 명도로 정리되었다.

신화와 관측 사이, 그 중간의 자리

하늘은 항상 상징의 장이었다. 그리스에서 북두칠성은 수레로, 동아시아에서는 국자이자 북두칠성의 자루 끝으로 방위를 잡는 기준이었다. 카시오페이아는 허영에 가득 찬 왕비였고, 오리온은 사냥꾼이자 거인으로 그려졌다. 신화를 외운다고 별이 더 잘 보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신화를 모를 때와 알 때, 별의 표정이 다르게 보이는 건 사실이다. 이야기의 레이어가 한 겹 더해지면, 밤은 더 두꺼워진다.

신화에 과하게 기대면 현실이 가벼워지는 문제가 있다. 반대로 신화를 전부 버리면, 눈앞의 별들을 좌표와 숫자만으로 소비하기 쉽다. 나는 중간을 택한다. 별을 보되, 가끔은 이야기를 꺼내본다. 오리온의 허리띠가 세 개의 별로 단정하게 서 있을 때, 나는 그 세 별을 오늘의 마음 세 가지 단어로 바꿔본다. 불안, 기대, 지루함. 그중 어느 하나가 지나치게 커져 있지 않은지 살핀다. 신화처럼 비유해놓으면, 마음을 직접 찌르기보다 옆에서 비춘다. 이렇게 우회하면 방어가 덜 올라온다.

외로운밤에만 가능한 독백

낮의 바쁜 시간에는 스스로에게 정직하기 어렵다. 타인의 시선, 마감, 메시지 알림이 끊임없이 개입한다. 외로운밤은 복잡하지만 그만큼 내 목소리가 또렷해진다. 별자리를 읽는 일은 독백의 형식을 빌려 자기 점검을 하는 방법이다. 말의 도구를 바꾸면 생각의 방향이 바뀐다. 별자리의 선을 연필로 그리듯 이어가다 보면, 선과 선 사이 빈칸이 보인다. 그 빈칸이 오늘 내가 놓치고 있던 것이다.

나는 종종 이름 없는 별, 그러니까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희미한 별들을 오래 본다. 그럴 때 느끼는 건, 삶에서 주연의 역할만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조연이 의외의 장면을 만들고, 배경이 중심을 돋보이게 한다. 미리 계획해 둔 날이 망가지는 날도, 그중 어떤 요소는 나중에 단단한 기억을 만든다. 외로운밤은 실패처럼 느껴질 때가 많지만, 장기적으로는 내 구조를 보강하는 보수공사 같은 시간이다.

별을 보러 가는 몸, 돌아오는 마음

장거리로 별을 보러 나가는 일은 작은 원정이다. 준비가 전부를 좌우하진 않지만, 준비가 안 되면 쉽게 포기하게 된다. 운전해서 영월이나 지리산 자락까지 가는 경우, 관측지에 도착해 하늘을 올려다보기까지의 과정을 몇 차례 반복하면서 몸에 익힌 요령들이 생겼다. 납득 가능한 실패를 몇 번 하고 나면 다음부터는 마음이 덜 쪼그라든다.

처음에는 좋은 사진을 찍고 싶었다. 인터넷에서 본 은하수 사진, 분홍빛 성운, 별이 길게 선을 그리는 타임랩스. 삼각대, 광각렌즈, 타이머 릴리즈를 챙기고 노출 값과 ISO를 계산했다. 결과는 크게 실망이었다. 하늘은 아름다웠지만 사진은 어딘가 지저분했고, 초점은 늘 반 걸음씩 어긋났다. 그날 배운 것은, 첫 목적이 다가 아니라는 점이다. 장비의 성능보다 하늘을 보는 시간이 중요하다는 사실. 이후로는 사진은 덤으로 남는 부산물로 두었다. 그러자 한 장씩 쓸 만한 결과물이 따라오기 시작했다. 마음을 거꾸로 먹는 일은 흔치 않지만, 별 보기는 그 중 하나다.

또 하나의 요령은 동행을 설득하는 방식이다. 별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 별을 보러 가자고 하면 열에 아홉은 피곤하다고 한다. 이때 관건은 스토리의 문구다. 은하수 보러 가자는 제안은 낭만적이나 피곤해 보인다. 대신, 동네에서 가장 어두운 공원으로 걸어서 15분만 나가, 20분만 하늘을 보고 오자고 하면 수락률이 높아진다. 실제로 20분만 제대로 보면 꽤 많은 것을 본다. 금성, 목성, 밝은 별자리의 뼈대, 심지어 국제우주정거장이 지나갈 때도 있다. 사람이 경험으로 납득하면, 다음에는 기꺼이 더 긴 원정을 감수한다.

오늘의 마음을 적는 작은 의식

별을 본 날, 짧은 메모를 남겨두면 시간이 지나도 그 밤의 촉감이 돌아온다. 기록은 길 필요가 없다. 나는 날짜, 날씨, 본 별자리 하나, 떠오른 단어 하나만 적는다. 내 노트에는 이런 문장들이 있다. 8월 12일, 적운과 별 사이, 전갈자리 꼬리, 과유불급. 11월 3일, 찬바람, 페가수스 사각형, 기준. 1월 19일, 손끝 저림, 오리온 대성운, 숨. 딱 이만큼의 단서만으로도 그날의 공기와 소리가 복원된다. 기록은 회고를 가능하게 한다. 회고가 되면 감정의 패턴을 읽는다. 패턴을 읽으면, 오늘의 마음을 조금 더 빨리 알아차린다.

    집에 돌아오면 하늘에서 본 것 하나와 몸에서 느낀 감각 하나를 적자. 별의 이름과 피부의 온도, 이 두 가지만으로도 충분하다. 내일의 나를 위한 질문을 한 줄 남기자. 오늘의 별자리가 던진 물음은 보통 간결하다. 무엇을 줄일 것인가, 어디서 멈출 것인가 같은 질문이다. 사진이 있다면, 한 장만 고르고 이유를 붙이자. 이유는 미학이 아니라 감정의 단서여야 한다. 흐릿하지만 마음이 멈춘 지점이라면 더 가치 있다. 잠들기 전, 불을 끄고 30초 동안 호흡을 세자. 별빛이 들어왔던 동공의 크기를 떠올리며 숨을 고른다. 낮보다 조금 느린 호흡을 느낀다. 다음 관측일을 대략 잡아두자. 완벽한 날을 기다리면 자주 놓친다. 구름이 반쯤 있어도 괜찮다는 걸 기억한다.

이렇게 간단한 의식은 나를 큰 목표로 몰아가지 않는다. 다만 외로운밤마다 같은 자리로 되돌아오는 작은 길을 만든다. 그 길이 익숙해지면, 감정의 파도가 커도 발을 디딜 모래사장이 생긴다.

무기력의 경계, 안전의 원칙

밤에 혼자 밖에 나가는 일은 언제나 경계를 필요로 한다. 별을 보러 나가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두 가지를 점검한다. 첫째, 오늘의 몸 상태. 잠이 부족하거나 감기에 걸렸다면 무리하지 않는다. 둘째, 장소의 안전. 밝은 길, 인적이 어느 정도 있는 곳, CCTV가 있는 공원 입구, 이런 조건을 체크한다. 차를 몰고 멀리 가는 경우에는 사전에 주차가 가능한지, 휴대전화 신호가 잡히는지 확인한다. 더불어 방한 장비는 과하다 싶을 만큼 챙긴다. 겨울철 야외에서 체감 온도는 예보보다 3도에서 5도 낮다. 작은 보온 텀블러 하나가 관측 시간을 두 배로 늘려준다.

이 원칙들은 상투적으로 들리지만, 실제 현장에서 종종 무시된다. 어느 날 밤, 나는 서두르다 장갑을 놓고 나왔다. 처음 10분은 괜찮았다. 20분째부터 손의 감각이 사라졌다. 별자리는 잘 보였지만, 몸은 금세 피로를 기억한다. 그러면 다음 번 외출이 싫어진다. 안전과 보온은 관측 효율의 문제가 아니라 습관의 유지에 관한 문제다. 별 보기의 가장 큰 적은 악천후가 아니라, 나쁜 기억이다.

별의 시간으로 생각하는 법

별빛은 대부분 오래 걸려 우리에게 온다. 시리우스의 빛은 대략 8.6년 전, 베가의 빛은 25년 전, 데네브의 빛은 수백 년 전을 떠나왔다고 알려져 있다. 우리가 보는 하늘은 지금이 아닌 과거의 겹침이다. 이 사실을 떠올리면, 오늘의 마음도 한 박자 늦게 반응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무언가를 바로 해결하려는 충동이 덜어지는 것이다. 외로움 역시 오래된 빛처럼 지연되어 도착한다. 낮에 쌓인 말의 잔상, 오해의 그림자, 자기혐오의 얼룩이 밤이 되어 한꺼번에 떠오른다. 이를 즉시 제거하려 들면, 더 진해진다. 별의 시간으로 생각하면, 오늘의 마음은 오늘 결정된 것이 아니라 지난 며칠 혹은 몇 달의 누적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그렇다면 필요한 건 즉각적인 처치가 아니라, 리듬의 조정이다. 수면, 식사, 산책, 대화, 이 네 가지의 주기를 손보는 것이 별 보기를 통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해법이다.

별을 모르던 이에게 건네는 첫 별

지인 중에는 별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있었다. 그에게 첫 별로 무엇을 소개할까 고민하다가, 카시오페이아를 골랐다. 이유는 간단했다. 북쪽 하늘이라 찾기 쉽고, W 자 모양 덕분에 한 번 보면 잊기 어렵다. 겨울이면 북극성 찾기의 길잡이가 되기도 한다. 그날 우리는 강바람이 부는 둔치에서 하늘을 올려다봤다. 불빛이 적지 않아 흐릿했지만, 다섯 개의 점이 어렴풋이 이어졌다. 너는 어떻게 이걸 알아보냐고 묻길래, 나는 손으로 공중에 선을 그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세 번째와 네 번째, 각도를 맞추면 W 자가 완성된다. 말보다 손의 선이 더 빨리 이해를 돕는다. 그는 잠시 침묵하더니 그러면 저건 뭐냐며 다른 별도 가리켰다. 그렇게 15분 동안 우리는 다섯 개였던 별에서 열두 개의 별로 세계를 넓혔다. 밤이 다 끝난 것은 아니었지만, 그에게 그날의 외로운밤은 더 이상 똑같지 않았다.

오늘 밤을 위한 작은 제안

하늘이 완벽히 맑지 않아도 된다. 구름이 흘러가며 별을 가렸다 드러내는 리듬에 맞춰 숨을 쉬어보자. 내일의 마감을 생각하면 떨려오는 긴장감이 있더라도, 15분만 시간을 빼내 보자. 집 앞 골목, 옥상, 창문틀에 팔꿈치를 올린 자리에서도 충분하다. 별자리의 모든 이름을 몰라도 괜찮다. 두세 개의 밝은 별만으로도 오늘의 마음을 읽는 데에는 충분하다. 눈에 들어오는 첫 별을 오늘의 대표로 삼아, 그 옆의 어두운 별 하나에 마음을 얹는다. 밝음과 어둠을 동시에 바라보는 연습, 그것이 별이 주는 수업의 전부일지도 모른다.

외로운밤이 반복될 때, 별은 매번 같으면서도 다르게 선다. 어제의 별빛이 오늘 도착하고, 오늘의 우리는 어제와 조금 다르다. 그 미세한 차이 속에 변화가 있다. 누군가의 말로는 위로가 되지 않을 때, 하늘의 묵묵함이 오히려 힘이 된다. 별자리는 점괘가 아니라, 우리의 언어다. 하늘의 선을 이으며 오늘의 마음을 말로 옮겨 적어보자. 적어도 그동안 나는 그 방법으로 몇 번의 외로운밤을 무사히 지나왔다. 그리고 내일도 그럴 것이다.